이
世上 모든 萬物은 根源이 있고 그 뿌리가
있다. 이러하듯 사람에게 그 뿌리와 根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돌이켜 보건대 ○○○氏는
始祖 慎修(高麗 文宗 二十二年, 西紀 一○六八年)가
이땅에 安着한지 어언 千年을 바라보는
攸久한 歲月을 지내온 傳統있는 家系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始祖 慎修는 恭獻公
諡號를 받으셨으며 後世 十三世祖 襄烈公까지
獨身으로 내려오시다 襄烈公께서 三兄弟분을
두시니 바로 幾(叅判公), 言(署令公), 銓(襄簡公)이시다.
叅判公께서 四兄弟를 두시니 곧 先甲(監司公),
後甲(叅議公), 先庚(同樞公 : 우리 할아버지),
後庚(通禮公)이시다.
우리
○○○氏 先祖는 高麗時代를 거쳐 李氏朝鮮
五百年을 내려오는 동안 우리 慎門은 文武를
두루 兼한 巨卿碩學을 輩出하여 이 民族의
發展을 爲하여 功獻해 왔음은 歷史에 記錄된바와
같이 自他가 認定하는 事實입니다. 이러한
오늘날에 와서 西歐化된 文化 文明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現實에서 우리의 傳統과 뿌리를
後孫들에게 일깨워주고 繼承시키는 것은
이 時代에 해야 할 우리의 義務이고 使命이라고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더욱이 앞으로는
이 나라에도 머지않아 戶主制마저 사라질
危機에 있으며 氏族의 繼承마저 장담할
수 없는 時代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不確實한 未來를 안고 살아가는
現實에서 우리의 氏族이라도 뿌리를 간직해
나간다는 마음으로 ○○○氏大宗會에서는
三十年을 週期로 大同譜를 發刊하고 있으나
이것만 가지고는 變遷하는 現實을 제대로
反映할 수 없다는 事實을 어느 宗人이나
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數年前부터 同樞公派宗親會의 派譜를
만들어 빨라지는 世代의 흐름을 반영하고
記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重要하다고
생각하여 同樞公派 三門中에서 뜻을 같이한
斗晟(水原門中) 鏞俊(坡州門中) 重哲(海州門中)等
宗人이 發起하여 三.四年 동안 羲牲과
奉仕精神으로 考證을 蒐集하고 방대한
各種資料를 蒐集하여 現時代에 符合되는
電子族譜를 編纂하기에 이르렀습니다.
電子族譜는 아직까지 他門中에도 없으려니와
우리나라 全氏族 中에서도 그리 많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作業이야 말로
어렵고 방대한 作業이지만 尖端時代를
살아가는 우리의 後孫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寶石과 같은 일이라 생각하여 數次에
걸친 任員會議와 總會를 거쳐 派譜 編纂
結定을 하였습니다.
일의
성격상 努力과 時間은 물론 所要되는 製作豫算等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三門中 宗人들의
적극적인 協力과 任員여분의 協助로 이루어졌음은
世人으로부터 讚辭와 부러움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해 마지 않습니다. 世間에
禽獸도 族譜가 있어야 待接을 받는 時代라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族譜가 무엇보다
所重하다고 생각하며 더욱이 派譜를 門中
全宗人이 所藏한다는 것은 宗親會의 어느
目的事業보다 重要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나가는 崇祖事業과 奬學事業에
못지 않는 後孫들의 和睦, 尊敬, 人性과도
直結된다 하겠습니다. 이 事業이야 말로
全 宗人의 慶事가 아닐 수 없습니다.
特히
이번 派譜編纂을 위하여 프로그램을 받아드려
入歷作業을 하신 海州門中의 重哲顧門님과
매일같이 출근하여 考證과 學文을 베풀어주신
水原門中의 斗晟顧門님, 前任會長으로서
아낌없이 指導鞭撻 하여주신 鏞俊顧門님께
眞心으로 全宗人을 代身하여 머리 숙여
感謝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