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문(宗門)의 육간보(六刊譜)인 계미보(癸未譜)의
편수(編修)를 시작한지 어언 三년이 되었습니다.
종친(宗親)
여러분에게는 무한(無限)이 지루한 세월(歲月)이었지만
편집인(編輯人)에게는 정신없는 나날이었고
三년이란 긴 세월이 언제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記憶)은 희미(稀微)하고
감회(感懷)는 착잡(錯雜)합니다.
족보(族譜)의
편집(編輯)을 마쳤으니 의당(宜當) 신보(新譜)에
대한 발간동기(發刊動機)와 국문족보(國文族譜)의
필요성(必要性) 등을 덧붙이는 것이 순서(順序)인듯하나
이미 여러 분이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을
통하여 좋은 말씀을 하였고 간행규약(刊行規約)에
명시(明示)하고 있으므로 접어 두기로
하고 그 동안의 편집과정(編輯過程)을
서술(敍述)하고자 합니다.
신보편집(新譜編輯)을
하면서 여러 가지 문헌(文獻)을 참고(參考)한
바 ○○○성(○○○姓)이 사성(賜姓)된
흔적(痕迹)이 발견(發見)되지 않았으므로
중국(中國)에서 도래(渡來)한 성(姓)임에는
이론(異論)의 여지(餘地)가 없음이 확인(確認)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조(始祖)께서 어느 연대(年代)에 무슨
사유(事由)로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는가를
문헌부족(文獻不足)으로 확인(確認)하지
못하고 이를 후세인(後世人)에게 미루게
되었음이 아쉬우나 득본경위(得本經緯)를
명확(明確)하게 밝힐 수 있었으므로 다소
위안(慰安)은 되는 바입니다.
二○○○년
八월 十九일 보소(譜所)를 개설(開設)하고
二년 안에 편집(編輯)을 완료(完了)한다는
계획(計劃)을 발표(發表)하였으나 납단(納單)이
지연(遲延)되고 수단서(收單書)의 재작성(再作成)으로
업무량(業務量)이 폭주하는 등 예측(豫測)하지
못했던 상황변동(狀況變動)이 있어서 불가항력(不可抗力)으로
편집이 지연되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종친(宗親)으로부터 많은 질책(叱責)을
들었고 의심(疑心)도 받았으나 질책은
편집인(編輯人)의 몫이므로 겸허(謙虛)하게
받아 드리겠으며 편집기간(編輯期間) 중
한점 부끄럼 없이 최선(最善)을 다하여
업무(業務)에 임했음을 종친(宗親) 여러분에게
맹서(盟誓)하는 바입니다.
二○○一년
八월 二十일부터 九월 三十일까지 편집(編輯)과
수단(收單)에 관련(關聯)되는 모든 업무(業務)의
준비작업(準備作業=운영위원회의 결의에
의하여 경리직원 선발, 신문광고 게재,
간행규약 중 세부사항(범례=凡例) 결정,
조판업체 물색, 경쟁입찰 공고 등)을 마친
후 十월 一일 경리직원(經理職員)이 채용(採用)되었으므로
잡무(雜務)를 맡겼습니다.
같은
해 十월 十일부터 二十六일까지 三,五○○명에
대한 수단안내문(收單案內文)을 발송(發送)하고
같은 달 二十五일 조판계약(組版契約)이
체결(締結)되었으며 같은 해 十一월 一일부터
十二월 三十일까지 정사보(丁巳譜=一九七七년
발간)에 의하여 인명록(人名錄)을 국한문(國漢文)을
병기(幷記)하여 작성(作成)하고 인명록(人名錄)
교정(校正)을 완료(完了)하는 등 업무(業務)가
예정(豫定)대로 진행(進行)되었습니다.
二○○一년
一월 三일부터 二월 二十八일까지 이미
접수(接受)된 수단원부(收單原簿)를 정사보(丁巳譜)와
교합(校合)하였고 같은 해 三월 一일부터
편수(編修)에 직접 참여한 만희(晩熙)
족질(族姪)과 오전(午前)에는 수단접수(收單接受)와
교합업무(校合業務)를 수행(遂行)하고
오후(午後)에는 수단원부에 의거(依據)하여
편수(編修)를 한 후 조판업소(組版業所)에
송출하는 작업(作業)을 매일 반복(反復)하였습니다.
계획(計劃)대로라면
늦어도 二○○一년 六월 三十일까지 수단(收單)이
완료(完了)되었어야 했는데 납단실적(納單實績)이
상상(想像)할 수 없을 정도(程度)로 저조(低調)하여
수단을 마감할 수 없었으므로 간행위원장(刊行委員長)
및 운영위원장(運營委員長)과의 협의(協議)에
의하여 수단기간(收單期間)이 연장(延長)되었습니다.
二○○二년
三월 三十一일 재정형편상(財政形便上)
경리직원(經理職員)이 해임(解任)되고
그 직원(職員)이 수행(遂行)하던 업무(業務)를
수보인(修譜人)이 인수(引受)하여 편수업무(編修業務)와
병행(幷行)하였으며 납단성적(納單成績)은
여전(如前)히 부진(不振)하였으므로 二○○二년
十一월 三十일 수단(收單)을 마감하였고,(수단기간
十三개월) 二○○二년 十二월 十六일부터
二○○三년 一월 二十九일까지 자손록(子孫錄)
본문(本文) 一차 교정(校正)을 시작으로
二○○三년 三월 十三일부터 四월 二十四일까지
二차 교정시행, 같은 해 五월 十五일부터
六월 十五일까지 三차 교정시행, 같은
해 七월 一일부터 七월 二十일까지 四차
교정시행, 같은 해 七월 二十五일부터
八월 十一일까지 五차 교정을 완료(完了)함으로써
편수업무(編修業務)를 사실상 마감하였습니다.(교정기간
八개월)
족보간행(族譜刊行)은
전 종친(宗親)이 참여(參與)해야 하는
중대사(重大事)인데 일부종친(一部宗親)이
개인적(個人的)인 이해(利害) 때문에 중대성(重大性)을
망각(忘却)하고 수단거부(收單拒否)를
했거나 거부(拒否)를 부추기는 언행(言行)을
함으로써 주위(周圍) 종친(宗親)에게 영향(影響)이
미치도록 하였음은 이해(理解)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분들의 숭조사상(崇祖思想)이
실종(失踪)된 것이 아닌가 우려(憂慮)됩니다.
조상(祖上)을 숭상하고 부모(父母)에게
효도하고 형제간(兄弟間)에 우애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本分)인데 숭조(崇祖)와 효제(孝悌)를
하지 않는 사람이 출세(出世)를 한다고
해도 가문(家門)의 영광(榮光)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일개인(一個人)의 영달(榮達)에
불과할 뿐일 것입니다. 우리 종친(宗親)들은
이와 같은 불미(不美)한 사례(事例)가
없도록 다 같이 숭조사상(崇祖思想) 고취(鼓吹)에
주안점(主眼點)을 두고 후세(後世)들을
올바르게 교육(敎育)하고 계도(啓導)함으로써
숭조(崇祖)와 효제(孝悌)와 출세(出世)가
병행(幷行)되도록 노력(努力)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족보편찬사(族譜編纂史)를 더듬어 보면
선조(先祖)께서 족보(族譜)를 편찬(編纂)하고
보급(普及)하여 숭조사상(崇祖思想)을
공고(鞏固)히 하고 애종정신(愛宗精神)을
함양(涵養)하여 종친간(宗親間)의 상부상조(相扶相助)를
도모(圖謀)한 흔적(痕迹)이 역력(歷歷)하며
이와 같은 맥락(脈絡)에서 족보가 주기적(週期的)으로
편찬보급(編纂普及)되었다고 보여지므로
우리 후손(後孫)들은 선조(先祖)께서 물려주신
유지(遺志)를 받들어 일가간(一家間)에
돈목(敦睦)하고 화합(和合)하여 상부상조(相扶相助)한다면
여하(如何)한 난관(難關)이라도 돌파(突破)할
수 있을 것이며 종문전체(宗門全體)가
크게 발전(發展)할 것이라고 확신(確信)합니다.
편집(編輯)을
마치고 마음이 후련하지 못한 것은 첫째는
우리 ○○○씨(○○○氏)의 득성유래(得姓由來)를
명확(明確)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그 일을
후세(後世)에게 미루게 되었음이 미안하고
둘째는 전종친(全宗親)이 족보간행(族譜刊行)에
참여(參與)하도록 유도(誘道)하지 못한
것이 한(恨)서러우며 셋째는 편집상(編輯上)
오류(誤謬)가 많을 것 같아서 종친(宗親)에게
죄송(罪悚)하고 넷째는 신보(新譜)에 대한
종친(宗親) 여러분의 만족도(滿足度)가
어떻게 나타날지 그 결과(結果)가 두렵기
때문이오니 많은 이해(理解)를 구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二년六개월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편수(編修)를 도와준 만희(晩熙) 족질(族姪)에게
무한(無限)이 감사(感謝)하고 편집업무(編輯業務)를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支援)한
간행위원장(刊行委員長) 건식(健植) 족제(族弟)와
운영위원장(運營委員長) 상현(相鉉) 족숙(族叔)에게
감사(感謝)하며 문헌번역(文獻飜譯)을
한 광식(光植) 족형(族兄)과 대구지구(大邱地區)
수단총책(收單總責)을 맡아준 일기(一基)
족숙(族叔)에게 감사(感謝)하고 일일이
열거(列擧)할 수 없지만 그 외 수단(收單)
및 번역(飜譯)과 교정업무(校正業務)에
성심성의(誠心誠意)를 다해주신 종친(宗親)
여러분에게 진심(眞心)으로 고맙다는 인사(人事)를
전하며 조판(組版)과 인쇄(印刷)를 맡아주신
뿌리정보미디어 사장(社長)님과 삼성인쇄(三省印刷)
회장(會長)님에게 아울러 감사(感謝)드립니다.
편집상(編輯上)
미흡(未洽)한 점이 부지기수(不知其數)여서
종친(宗親) 여러분에게 송구(悚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