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라
함은 한 종족(宗族)의 계보(系譜)로서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나타내는 기록 문건이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쳐 보첩(譜牒), 세보(世譜),
세계(世系), 세지(世誌), 가승(家乘),
가보(家譜) 등 여러 형태, 명칭으로 불려지면서
오늘에까지 족보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우리
○○○문(○○○門)도 一七○九년 기축세보(己丑世譜)를
시작으로 하여 계해보(癸亥譜)(一九八三년
발간)까지 九회를 발간하여 족보가 있는
가문(家門), 명문가문(名門家門)으로 전통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二十一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인 풍조와 우리들의
정신문화적 관념이 가족제도(家族制度)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二○○五년(乙酉)
우리나라 민법(民法)개정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호주제도의 폐지, 姓과 本의
변경 등 가족제도(家族制度)의 뿌리가
흔들리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계해보를 발간한지도 二十三년이 넘어
한 세대(世代)가 거의 다 되었고 새로운
족보발간의 필요성(必要性)이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 ○○○씨 문성공파 종중에서는 역점사업의
하나로 병술보(丙戌譜)를 발간하기로 결의하고
병술보(丙戌譜) 편찬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소생들이 병술보 편찬위원회 편집위원으로
위촉되고 이를 一년六개월 동안 추진하게
되었다.
각
지파 문중 회장님들이 열심히 수단을 모으고
각 지파별로 수단을 권장하여 계해보 보다
四千여명의 수단인원이 증가되었으며 누보(漏譜)되는
종원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혹시 누보된 종원이 있을까 염려되는 바이다.
이번
병술보(丙戌譜)를 편찬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첫째
: 젊은 세대가 족보를 가까이 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글(한자)과 한자를
병행하거나 한글화에 중점을 두었다.
둘째
: 시대적, 역사적 명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왕호와 간지, 간지와 서기년도를
병기하도록 노력하였다.
셋째
: 젊은 세대들과 국제화추세에 따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컴퓨터, CD족보 등
IT 문명에 접목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체제를 평이하게 작성하여
후배들에게까지 족보의 발간 보존을 염두에
두었다.
이제
병술보(丙戌譜)를 편찬, 발간함으로써
우리 ○○○문(○○○門) 족보사(族譜史)의
十回째 족보가 이 세상(世上)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는 우리 선대 조상님들의
얼과 혼, 그 빛나는 업적(業績)이 담겨
있고 우리 후손들의 일가(一家)되는 끈끈한
정, 혈연관계, 항고(行高)관계, 지연(地緣)관계
등 계보체계(系譜體系)가 확립되는 보전(寶典)임을
자부하게 된다. 이 우리 정문(鄭門)의
귀중한 역사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하여
문성공(文成公) 후손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후손 천세만대(千世萬代)에 이르는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면서 삼가 병술보간행발문(丙戌譜刊行跋文)을
기록하는 바이다.